제 목 나는 사랑 배달부<안숙희님> 조회수 2390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0-09-07 (15: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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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고령자 취업수기 시상식 대상작입니다>

 

나는 사랑 배달부 (안숙희)

 

굽이굽이 가파른 계단은 남편 없이 두 딸 키우느라 안 해 본 일 없이 살아온 내 험한 인생보다 더 버거워 보인다.
 “휴우”
저절로 지어지는 한숨을 뒤로 한 채 계단을 오른다.
예순을 넘긴 나이.
뇌출혈로 인한 두 번의 수술경력까지 있는 내겐 작은 연립의 4층 계단도 역시 만만치많은 않은 상대인가 보다. 하지만 놀란 표정을 하며 미소 지어줄 누군가를 떠올려 보자 한숨은 물러가고 영차영차 하는 응원만이 가슴속에 가득하다.
“딩동! 딩동”
땀으로 흥건해진 이마를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옷 매무새도 바르게 고친 뒤 초인종을 누른다. 낯선 문으로 빠끔히 얼굴을 내민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는 나는‘사랑배달부’ 이다.

 

중소기업, 식당, 부업........
내 연배의 많은 이들, 어느 아이들의 어미라며 누구나 그렇듯 수 십년 동안 수 십가지의 일을 닥치는 대로 하느라 나는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
두아이 키우며 일하느라 고단과 피곤으로 얼룩진 하루하루를 탓하며 때론 고생스럽던 일에 알 수 없는 원망으로 까맣게 밤을 새우던 날도 참으로 많았다. 좀 더 많이 배웠다면, 좀 더 부자였다면 편했을 텐데 자책하던 날도 있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장하다 싶을 만큼 나는 참 바지런히 열심히 일했다.


부족한 엄마 밑에서도 바르게 자라준 고마운 두 딸들과 아등바등 산 대가로 삶은 안정되어 갔고 둘째 아이의 결혼을 앞두고 이제 둘째마저 시집보내면 내게도 첫 휴식이 찾아오나 싶었었다.
하지만 지쳐 있던 삶은 곧 다가올 휴식을 기다려 주지 않았고, 나는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병으로 인해 생각보다 빠르게 덜컥 찾아온 휴식을 아무런 준비없이 맞이해야만 했다.


병으로 나약해진 몸이 이유가 되어 오매불망 고대하던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육체와 정신은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갑갑하고 답답했고 이상하리만큼 무기력해졌고, 한참 뒤에야 내 몸이 내 정신이 일을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몸이 어느 정도 완치 된 뒤 나는 아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다. 배운 것도 많지 않았기에, 딱히 따지는 일도 없었고 많은 임글을 바라지도 않는 나였거늘 단 하나 너무도 커다란 걸림돌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생산직, 식당일은 물론 작은 부업거리마저도 많은 나이를 이유로 주어지지 않았으니 그 무렵 다가 오던 허탈함과 허무함은 건강했던 정신마저 병들이고 있었다.

“이제 쉬실 때도 됐어요.”
“엄마! 그동안 고생 하셨어요.”
아이들은 오히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엄마를 다행스러워 하며 나를 위로 했지만 내게 필요한 건 아이들이 다달이 꼬박꼬박 붙여 주는 용돈이 아닌 일이였다.
내 몸으로 움직이고 땀 흘리며 할 수 있는 일.
거기에 주어지는 얼마의 값진 댓가.
힘들고 고된 일을 탓하며 살아온 지난날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일에 대한 소중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런 내 절실한 마음을 알았는지 6개월의 길고 길었던 구직기간을 보내고 나는 이 일을 시작 할 수 있게 되었다.


꽃바구니나 작은 화분, 혹은 중요한 서류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누군가에 전하는 일. 어찌보면 쉽고도 간단한 이 일을 지금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 되어있다.
 어느 날은 새벽녘에, 또 어느 날은 너무 먼 곳으로 때론 꽃바구니나 화분이 파손 되어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은적도 종종 있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도 즐겁고 자랑스럽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마음을 전하는 꽃.
누군가에게 급히 필요한 서류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제 시간에 정성껏 전하기 위해 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고 버스노선을 메모한다.
사랑을 고백 받은 어느 여학생의 발그레한 수줍은 얼굴에서 급했는데 너무나 감사하다며 나의 손을 잡은 회사원의 따스한 손길에서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다.


여름날엔 너무도 더워 비오듯 땀을 흘리고, 겨울날의 추위 속에 어두운 눈으로 길을 찾으려면 코끝이 에려 오기도 하지만. 가끔 높다란 계단이나 가파른 길을 만날 때면 무겁고 노쇠해진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모든 날이 내겐 활기차고 즐거운 날이었다.


내 손을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은 내 스스로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은 아직도 내게 매일 아침 새로운 나날들을 선물하고 있다. 그리고 많진 않지만 내가 번 돈으로 손주의 간식하나, 딸 아이의 선물하나를 사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나이 예순에 그렇게 다시 만난 일터는 나에게 건강과 활기를 그리고 놓쳐버린 줄만 알았던 열정을 다시 찾아 주었다.나이가 들어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건강한 육체도 빠른 이해력도 자취를 감추어 가지만 진정한 소중함과 작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의 눈은 커져만 간다.


열심히 일하는 것, 자신의 일을 갖고 활기차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그 어느 편안한 휴식보다 더 달콤한 하루를 선물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가위를 앞둔 터라 요즈음은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딩동, 딩동”

내일도 예순의 사랑 배달부는 세상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소중하고 고귀한 사랑을 열심히 배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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